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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성철 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작성자
민기수
작성일
2017.04.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65
내용

왜 성철 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성철스님의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 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철스님의 열.반.송.
근거 (조선일보 1993.11.15 15면), 동아일보(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은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됨) 하고자

1934년 23세 때에 부모, 형제, 처자 다 버리고 출가, 입산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한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초인적인 극기수행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임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참으로 세계 불교사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극기수행과 용맹정진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자기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됨)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의 선법의 법통인 "깨우침은 점진적으로 된다." 는

『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깨우침은 단번에 된다."고『돈오돈수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은 불교사상 보기 힘든 학승중의 학승이다.

그는 불교의 교의학을 거의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현대학문인 서양철학이나 심리학이나 종교학이나 물리학 등도 널리 섭렵하였으며,

또한 영어,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도 효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성철스님은 불교사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보배요,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온 불자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자들은 그를 "우리 곁에 왔던 부처" 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철스님은 말년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 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가 말년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 왜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퇴옹당 성철 큰 스님

①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스님의 말)
1993년 11월 4일 처음 출가한 그 방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다

그러나 큰 스님은 삼십 년 남짓 한결 같이 다니던 가야산 포행 길을 언제부터인지 힘겨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도 한 자락 가사 밑에 어느덧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 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말에 속지 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 . . . ? "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1993년 9월에 당신의 저서인 '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 선종의 종지를 담은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완간되는 것을 보고나서

두 달 만인 그 해 11월 4일 아침에 성철 큰 스님은 열반하였습니다.

"내말에 속지마라" 는 말을 던져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큰 스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선 잘하라 !" 그 한 말씀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 어깨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처음 출가한 그 방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니,

행운유수行雲遊水의 사문의 길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랍 59년, 세수 82세로 큰 스님은 열반 게송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마침내 생사를 벗어나 적멸에 든 큰 스님은 입적한 지 이레째 날

평생을 주석한 해인사 퇴설당을 떠나서 일주문 밖에 마련된 연화대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퇴설당 위로는 일시에 새떼가 날고, 다비 장에서는 때늦은 낙엽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스님 떠나던 그 날도 그러더니,

백련암 뒷산 하늘에서는 마치 불꽃이 타 오르는 듯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는 드물게 보는 방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이 넘게 걸린 다비는 일백여 과에 이르는 영롱한 사리를 남겼습니다.


다비식에서 사십구재에 이르는 동안 큰 스님의 떠남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뭇 대중의 발길은

해인사 앞뜰을 가득 메우며 끊일 줄 몰랐습니다.

②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요. (성철스님의 글)
조선일보 - 1987.4.23 7면
경향신문 - 1987.4.23 9면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빛총서 1] - 서울사시연 1994년 p.56-59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 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 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 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 악이 융화상통 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위 글에 당황한 불교 측에서는 사탄이 아닌 적불을 성철이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기 바쁘다.
사탄이 아닌 적불이었다면 왜 굳이 '적불'
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박식하신 분이
'사탄'
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겠는가?
악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악마도 적불인가?
도대체 그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그는 평생 자기 자신도 속아서 거짓말을 최상의 진리인 줄 알고 한 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무서운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뿐인가!
속고 속이고 한없이 이어질 것이니,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는 임종을 앞에 두고 어느 날 푸른 산에 걸려 있는 곧 떨어질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가야 할아비의 불지옥을 생각하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지도자들은 순진한 불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철스님의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회유하고 호도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 겸손을 나타낸 것이란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과연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평생 그가 주장하고 가르친 것은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불교에 귀의했고, 그리고 펴생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살았다.
그러므로 그의 평생의 모든 화두와 법어와 교설과 주장은 그것에 대한 설명이요, 해설이요, 논증이다. 다만 살을 붙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가 거짓말이라는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평생에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는

회한과 통탄의 고백과 토로는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고 했건, 의식하지 못하고 했건

그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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